[인터뷰] 비행기 모는 의사 장정순 교수 “항공우주 경쟁력, 의학의 힘에서 나온다”

장정순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장


제9대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장으로 취임한 장정순 중앙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허지윤 기자 

 

“미국과 유럽처럼 비행기가 많이 보급되고 우주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선 수십 년 전부터 항공 분야와 사람에 대한 연구에 많은 돈을 썼어요. 덕분에 항공우주 산업도 발전하고 인적 실수에 따른 항공사고를 줄이는 성과를 거두고 있어요.”


장정순 중앙대 의대 명예교수는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이자 비행 경력 13년의 조종사이다. 장 교수는 미국에서 비행학교를 찾아 다니며 조종훈련을 받았고, 국내에서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장 교수는 지난 1월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장에 취임했다.

장 교수는 16일 서울 강서구 마곡로 협회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한국은 항공기 운항, 공항 운영 같은 하드웨어 분야에선 선진국 수준에 올랐지만 항공의학 연구와 항공전문의사 양성 같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해 동남아시아 수준으로 낙후해 있다”며 아쉬워했다.

장 교수는 “항공우주산업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다양한 의학적 이슈가 점점 부각될 것”이라며 “항공우주의학 분야에서의 다학제 연구 확대, 항공우주의사 양성 등의 소프트웨어 측면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최근 항공산업이 발전하면서 항공사고의 원인 중 비행기 기체 결함 같은 하드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현저히 줄고 있다. 반면에 인적 요인에 따른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장 교수는 “세계 항공사고의 약 70%는 인적 요인에서 비롯한 사고인데, 조종사를 포함한 항공종사자의 피로 문제, 신체와 정신질환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연간 약 1만3000~1만5000건 정도의 항공 신체 검진이 수행된다”며 “이 중 약 90% 종사자가 항공업무 적합 판정을 받고 나머지 10%정도가 조건부로 적합 판정을 받고 업무를 수행 중”이라고 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는 경우는 0.1% 전후로 항공업을 떠나고 있다.

장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우주인 선발을 포함한 우주에서의 인체적응 문제’, ‘우주에서의 각종 신약개발’ 등이 항공우주의학 분야의 주요 R&D(연구개발)가 항공우주 의학 분야에서 큰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정부의 R&D 예산이 처음으로 이 분야에 편성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며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9년에 설립된 항공우주의학협회는 항공안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의 국가 사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법정기구다. 항공신체검사증명에 관한 심사업무, 항공전문의사를 위한 전문교육업무를 수행하는 국내 유일의 단체다. 과거엔 항공신체검사 검증이 핵심 업무였는데, 우주항공 산업이 발전하면서 협회의 기능과 역할도 다양해졌다. 각종 우주항공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항공의학 관련 데이터 축적과 분석을 거쳐 통계를 산출하고, 국토교통부와 관련 제도 시행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장 교수는 1984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해 지난 2022년 8월부로 중앙대병원에서 정년 퇴임했다. 현재 한국임상암학회 보험이사, 제14대 대한종양내과학회 회장등을 역임했다. 아래는 장정순 교수와 일문일답.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활주로 경비행기 앞에 선 장정순 항공우주의학협회장(중앙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본인 제공 

- 항공우주의학이 일반 의학과 다른 점은.

“항공의학은 기본적으로 높은 하늘이라는 비정상적인 환경에서의 신체의 반응을 다룬다. 쉬운 예를 들면, 장기간 담배를 피워 폐기종이 나타난 환자가 호흡 곤란을 일으켜 병원을 찾는 건 정상적 환경에서 환자 폐 기능 이상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항공의학에서는 건강한 조종사가 산소가 부족한 높은 고도의 비정상적인 환경에 노출돼 호흡곤란이 온 경우를 대비한 의학이다.”

-항공우주의학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항공 사고의 약 70%는 인적 요인 작용해 발생한 경우다. 이 가운데 조종사 과실이 대부분이다. 조종사의 피로관리, 조종사가 공간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신체를 관리하는 일이 항공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항공 분야의 기술과 산업 발전에 따라 조종실 환경도 빠르게 발전하며 바뀌고 있다. 항공종사자에 대한 항공의학적 기준과 시스템이 변화에 맞춰가야 한다.”

-최근 항공우주의학에서 주목할 변화는.

“항공산업발전에도 불구하고 비행사고와 같은 안전 문제가 계속 문제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차원에서 항공종사자의 ‘피로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수면의학, 심리학 같은 다양한 학문이 융합해 피로관리 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실 중 하나가 ‘피로 위험 관리 시스템(FRMS)’이다. 이제는 법제화해 운영 중이다.

우주 환경에서의 의학적 문제 해결도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성 유인탐사처럼 심우주 탐사 때 장기간 노출되는 우주 방사선을 해결하는 일은 매우 큰 문제로 떠올랐다. 우주에서 1년을 보내면 암 발병률이 10%씩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근골격이 극심하게 감소하는 현상도 함께 풀어야 할 문제다. 심근경색, 암과 같은 질환의 치료 방법이 발전하면서 우주인을 뽑는 신체 검사 기준에도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경남도가 지난달 9일 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를 기념해 도청 앞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모형에 '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를 경축하는 문구를 설치했다. /경남도
-항공우주산업 육성에서 항공전문의 양성이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외국의 경우 항공전문의가 되려면 1년 이상의 교육과정이나 항공의학관련 석사 정도를 요구한다. 국내는 단기 교육으로 양성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항공전문의사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 항공전문의가 공중근무 환경에 무지해 지상의학(ground medicine)의 일반 의학적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오류가 겪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공전문의는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할까.

“이런 문제는 강의만으론 되지 않는다. 비행 환경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실제로 체득하기는 어렵다. 실제 비행을 통해 업무의 복잡성도 이해하고 비행착각도 느껴 보는 것도 필요하다. 협회는 학술대회, 전문의사 보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항공의학평가관 연수 같은 해외 교류 네트워크도 만들어가고 있다. 항공기 사용사업체와 제휴해 항공의학평가관과 항공전문의사들의 탑승 비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추진 중이다.”

-국내 항공우주의학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항공분야는 투자에 대한 낙수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중후장대형 장치산업이므로 초기에는 국가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항공의학도 민간에서 영리 목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민간 주도로는 하기가 어렵다. 국가운영 항공의료센터를 설립해 국가 주도로 관리하고 향후 우주인 선발 관리까지 아우르는 조직이 필요하다. 최근 우주항공청 설립도 좋은 신호라고 본다.”